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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유적지]임충민공 충렬사 |
스트리트 생성일 : 2012.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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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충민공 충렬사 소개

 

자랑스런 대한민국 임경업장군의 고귀한 얼을 기린 곳

사적 189호로 지정된 충렬사는 조선 16대 인조때의 명장 임경업(1594~1646)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1697년 사당이 지어졌고 1726년 장군의 유상을 모셨다. 1747년 부인 전주이씨의 정렬비(貞烈碑)와 1791년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가 각각 건립되었고 그 후 1978년 성역화되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임겅엽장군의 호국충절의 숭고한 기상과 애국정신을 심어주는 교육장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단월동에 위치하고 있는 충렬사는 면적 8,943평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고 사당과 강당, 비각, 진무문, 갈성문등의 옛 시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충렬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유물전시관에서는 임경업장군이 직접 작성한 유필과 함께 임장군이 사용했던 추련도, 유상, 압록강연변방위도 등 다양한 유물들이 깔끔하게 전시되고 있다.

 

임경업 장군

선조 27년(1594). 바로 이 곳 충주 대림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출중함을 보였으며 광해군 10년(1618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낙안군수, 정주목사, 청북방어사 겸 영변부사, 의주부윤, 평안도 병마 절도사 겸 안주목사 등 요직을 두루 맡아 뛰어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국토방위를 위하여 대외항전의 일선에서 수 많은 공헌을 남겼다.

 

정묘, 병자호란을 당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임장군은 백마산성, 의주성 등을 수축하여 국방강화에 주력하는 한편, 반청친명의 확고한 신념으로 청나라에 대항하여 싸우며 나라의 기둥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군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모함에 의하여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그 후 억울하게 죽어간 임장군의 공적이 후세에 인정되어 숙종 23년(1697)에 왕명으로 충주 단월 이곳에 충렬사를 건립하고 영조 3년(1727년)부터는 춘추로 향제를 올려왔으며 1977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충렬사를 성역화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새로이 보수공사를 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 추 련 도

 

임경업 장군이 당시 호신용으로 사용하던 3척 길이의 칼로 역사적 · 기술적 가치가 큰 유물이다. 추련도의 칼날은 철, 손잡이와 칼집은 목재로 제작되어 있고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과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등이는 얇은 철판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그 위에 주석 · 납으로 합금하여 도금한 것이 특징이다. 칼 배의 양면에 한시가 음각 점선조로 28자가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호시래부재래(時呼時來否再來) - 때여 때는 한번 와서 다시 오지 않나니
일생일사도재연(一生一死都在筵) - 한번 나서 한번 죽는 것은 바로 여기 있네
평생장부보국심(平生丈夫報國心) - 장부의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삼척추련마십년(三尺秋蓮磨十年) - 삼척 추련검을 십년이나 갈았네

 

◆ 어제 달천 충렬사비

 

충민공 임경업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91년에 왕명으로 세워진 비이다. 화강암을 사용하여 제작하였으며 높이 183, 너비 71, 두께 42의 크기로 이루어져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삶을 마감한 임장군의 누명이 벗겨지자 그의 충절과 업적을 기리고자 하여 사당을 세우고 정조가 친히 글을 지어 새긴 어제 달천 충렬사비는 이후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마다 미석의 글씨에서 땀이 흘러나와 명주로 닦았다는 전설도 전해오고 있다. (충북 유형문화제 272호)

 

임충민공 충렬사는 여타 사당과 다르지 않은 자연미를 뽐내고 있다. 충주의 젖줄, 달천강이 흐르는 옆 입구에 들어서면 푸르른 잔디 위에 양옆으로 유물전시관과 비각을 볼 수 있다. 정면에는 충렬사의 첫 관문인 갈성문이 관광객들에게 문을 열고 있다. 갈성문을 지나면 양 옆으로 강당과 어제 달천 충렬사비가 손짓하고 있고 역시 정면에는 충렬사의 두 번째 관문. 진무문이 버티고 있다. 진무문 마저 지나치면 드디어 깔끔한 임장군의 사당에 닿을 수 있다. 충렬사는 이런 역사사적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벤치와 잔디, 계절별 꽃들이 상시 관광객들에게 산뜻함을 선물하고 있다. 문화유적도 감상하고 간편한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없는 구색을 갖춘 충렬사. 나라를 향한 임경업 장군의 충성스런 마음처럼 충렬사는 충주 한켠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주소 : 충북 충주시 단월동 411-5
TEL : 043)850-7302
『취재:박일호기자/m123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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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036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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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3.04 08:39:00
    충주에 살면서 들 몇번씩 다녀들 가시잖아요 추련도 길이를 봐선 장군키가 2미터는 넘었을겁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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